선돌을 찾아서 영월로 가다
영월에 간 김에 캐나다에서 온 사위가 보고 싶어하던(여기를 클릭해 보세요), 그리고 장인 장모를 위해서 선돌을 네비에 찍었다. 산 비탈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올라가니 고갯마루에 넓은 주차장이 있고, 국토교통부에서 세운 소나기재라는 간판에 해발 320m라고 표시해 두었다. 그제서야 한번 와 보았던 기억이 되살아 나고 강가에 바위가 나란히 서 있던 생각이 나는 것이다.
8월 초순의 한여름 무더위 속에 산등성이를 따라서 거의 반 시간 정도 걸었다. 땀이 비 오듯 전신을 타고 내리고 땀에 젖은 옷이 감기면서 애를 먹고 도착한, 선돌을 바라보는 전망대에 도착하고 보니 옛날에 보았던 그 선돌이 그대로 서있다. 반가움에 말 없는 안부를 맘으로 전한다. 서로 마주 보고 나란히 서있는 두 개의 바위다. 왼쪽에 있는 바위가 좀 더 높고 크다. 오른쪽에 있는 것이 쌍둥이 동생같이 느껴진다. 아마도 본래 하나의 바위가 둘로 나누어진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이 쌍둥이 형제 바위가 굽이져 흐르는 동강을 억겁의 세월 동안 내려다보면서 지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야 한번 왔다 보고 가면 그만이지만 이 쌍둥이 선돌은 언제까지나 그대로 선체로 자세한 번 흩트림 없이 영원히 영원히 지겹지도 않은지 영월의 동강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선돌을 입석(立石)이라고 하면 좀 유식한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우리 같이 무식쟁이는 선돌이 맘에 든다. 선돌은 자연적으로 서 있는 것이 있고 사람이 일부러 세운 것이 있다. 일부러 세운 것 중에 수원에서 부산까지 걸어갈 때 경상북도 영천의 들판 가운데 서 있던 선돌이 기억난다. 사람이 세운 선돌은 아래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라면서, 자연적으로 서있는 선돌 이야기를 해 본다. 재가 자라던 부산의 동래 삼어 부락(현재 해운대구 반여4동)은 마을 앞에 수영강이 가로지르고 그 넘어 상살뫼(장산)가 우뚝 서 있다. 정상은 널찍한 바위가 네모나게 오른쪽에 약간 비켜 앉아 있는데 이를 "세이바우"(바우는 바위의 사투리)라 했다. 이바위에 조개껍질이 있는 것을 보면 해저에서 융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정상 왼쪽에 "장자바다"라 하여 고원이 펼쳐져 있는데 여기에 6, 25한국 전쟁 당시부터 군부대가 주둔하여 왔고, 레이더도 있었다가 철거하였다가 또 설치했다는 말도 들린다. 아직도 미군 통신대도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장산 꼭대기에서 해가 돋는다. 6, 25한국 전쟁 중에 피난민들이 생계를 위해서 이산에 있는 소나무와 억새 등을 배어서 시장에 내어 팔기도 하여 거의 민둥산이 되자, 세이바우 아래에 나선 것이 높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동안 나무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 나무가 없으니 드러난 것이다. 어른들이 선돌이라 하셨다. 그로부터 한참 잊고 지냈는데 2000년 1월 1일에 집사람과 새천년을 맞이하기 위하여 일부러 수원에서 부산까지 가서, 새벽에 정상에 올랐다. 해는 엷은 구름에 가려서 9시경이나 되어서 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맑은 해를 보지 못하여 아쉬워하는 가운데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나와서 보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바로 큰 돌이 높다랗게 앞에 서있는 것이다. 그제서야 아 이게 옛날에 우리 동네 우리 집에서 보이던 그 선돌이구나 하고, 너무도 반갑고 지나간 세월이 주마등같이 떠오르는 것이다. 지금은 또다시 주위에 나무가 자라서 우리 집이 있던 삼어 마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로부터 한참을 지나 어느 날 경남 산청의 중산리에서 지리산 등산을 할 때에 산의 중간쯤 못미쳤어 바위가 칼 모양으로 높이 서 있는데 이것은 칼 바위라 했다. 이 지리산 칼바위는 등산을 하는데 얼마 정도 올라왔는지 가늠을 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여기를 클릭해 보세요). 그리고 또 하나 더 하고 싶은 말은 20세기가 가기 전인 1999년에 수원에서 부산까지 걸어갈 때 경상북도 영천의 들 가운데에 해가 서산을 넘어가고 땅거미가 지는데도 홀로서 있던 선돌이 지금도 삼삼하다(여기를 클릭해 보세요).
거석 문화의 일종으로 자연석이나 가공한 돌들을 어떤 믿음의 대상물(다산, 풍요 기원)이나 특수목적(무덤, 표지)으로 세운 돌기둥.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메니르(menhir)라는 표현도 학술서적에서는 등장한다. 선돌은 보통 장승처럼 마을 입구에 세우지만 논밭 가운데나 고인돌 옆에 위치한 것도 있다. 선돌 여러 개가 간격을 두고 배치되었다면 벌릴 렬(列) 자를 써서 열석(列石), 또는 프랑스어로 알리뉴망(alignments)이라고 부른다. 순우리말로는 선돌 외에 삿갓바위, 선바위, 돌꼬지, 도두라고도 한다.
일명 ‘입석(立石, menhir)’이라고도 한다. 고인돌〔支石墓, dolmen〕, 열석(列石, alignement)과 함께 대표적인 거석문화(巨石文化)의 하나이다. 그러나 고고학에서 일컫는 선돌이란 선사시대, 특히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에 걸쳐 이루어진 유적에 한정시키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출처: 선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마지막으로 한말 한다면 자연이 세운 선돌은 경이롭고 신비롭다. 미국의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엘 케피탄(El Capitan) 바위도 그렇고, 호주의 지상최대의 바위 울루루(에어록)도 그렇다. 반면에 사람이 세운 선돌은 샤머니즘이 들어 있고 미스터리하다는 것이다. 영국의 스톤헤지도 그렇고, 이스트섬의 모아이도 그렇다.
- 宇賢 모닥불 文浩一 -
2022년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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